그리운 엄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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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잘 주무시고 계시는 거지? 너무 잘 주무시느라 내 꿈에도 오빠 꿈에도 놀러 오지 않으시는 거지? 2023년 7월 25일 아침에 좋아하시는 쑥 인절미 잘 드시고, 칫솔질도 해 드리고, 예쁘게 머리도 빗겨 드리고, 주간보호센터 보내 드렸는데…. 엄마 왜 안 돌아오셨어? 그리 가시는 건 반칙이지?
주간보호센터 가신 지 10일도 안 되어 그리 가실 줄 알았더라면 그냥 내가 모시고 있을걸? 내가 이래도 오래 못 산다 할 때도 엄마는 걱정 말라고 오래 살 거라고 그랬지. 간병하느라 잠 못 자는 내가 안쓰러워 “고만 잠자듯이 죽었으면 얼마나 좋을꼬.”라고 하셨을 때도 내가 알아들었어야 했었나 엄마? 척수염으로 인해 걷지 못할 거라는 진단을 받으면서 시작된 엄마와 나의 동거 생활! 시골집에서 병원에서 우리집에서 엄마와 함께했던 몇 달 동안 난 정말 좋았어. 엄마와 가장 많이 살지 못했던 막내인 내가 엄마와 함께하고 싶었어. 남들은 며느리도 있는데 왜 네가 모시냐고 했지만 우리 엄마, 걷지 못해서 대소변을 받아 내어야만 하는데 그것을 며느리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어. 엄마도 그러셨지? 누구보다 깔끔하고 착한 자존심을 가지신 엄마가 며느리에게 그런 모습 안 보이고 싶으셨지? 그런 우리 엄마 마음 막내딸이 알고 멋있게 새언니에게 이야기했어. “딸도 자식이에요. 제가 엄마 모실게요. 걱정 말고 열심히 일하세요.”라고. 그 마음이 이뻤던지 오빠 부부는 돈 열심히 벌어서 병원비 보내 주신다 했어.
엄마, 엄마가 아들딸 잘 키우셔서 우리 오누이 참 착하게 컸지. 엄마 아셔요? 엄마 덕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달은 것을. 2년 7개월 전 어깨가 아프셔서 입원해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난 참 불만이 많았었어. 코로나가 무섭던 그 시절, 간병 자체가 힘들던 그때 오빠 부부는 다 직장을 다니고 할 수 없이 자영업을 하는 내가 문을 닫고 엄마를 간병할 수밖에 없었어. 내 몸은 병원에 있는데 아랫집에서는 물이 샌다고 연락이 오고, 남편은 지방에서 바쁘고, 아이 둘은 코로나에 걸렸다 하고…. 그때는 몇 개의 화살이 다 나를 향해 조준을 하고 있는 듯 느껴졌었지. 모두가 잠든 밤 병원 비상계단에 앉아서 나는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울었어. “하나님 왜 저만 이렇게 힘들고, 왜 저만 이 모든 일을 해야 하는 거예요? 저도 좀 남들처럼 편하게 살면 안 돼요? 왜 저만 힘들어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20여 분을 울었을까? 내가 믿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어. “너가 잘하잖아. 그러니까 너가 하면 되지?” 갑자기 눈물이 멈추고 내 가슴속에서 용기 같은 것이 솟아오르기 시작했어. “너 병원 근무할 때 친절한 간호사였잖아. 그러니까 네가 간호하면 되지? 하물며 환자는 네가 사랑하는 엄마잖아. 그걸 못하겠니? 돈을 못 벌어서 걱정되니? 그런다고 먹을 거 못 먹겠니?”
엄마 기억하지? 우리 그때 입원했던 7일 참 좋았잖아. 그날 이후 정말 난 엄마에게 최선을 다했어. 같은 병실 사람들을 돕고, 내가 강의하는 체조도 알려 주고, 아로마를 이용해서 병원 안을 향기롭게 만들기도 했었잖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봉사를 실천했지. 많은 분이 고마워하시고 나 같은 딸을 둔 엄마를 부러워하셨지? 그런데 우리 엄마, 퇴원을 하루 앞두고 우리 행복한 마음에 슬픈 소식이 다가왔지. 엄마 폐에 결핵균이 생겼다는 결과가 나와서 우리는 격리되듯 퇴원을 해야만 했지. 절망하지 않으리라 했던 내 마음에 또 절망이 찾아왔어. 아이처럼 알약을 삼키지 못하는 엄마가 드셔야 할 약이 무려 8알이나 되었지. 나는 엄마 결핵보다 그 알약을 삼켜서 드셔야 하는 고통이 더 걱정이었어. 예상대로 엄마는 너무 힘들어하셨지. 그리고 결핵 약의 최대 부작용인 가려움에 시달리게 되셨지. 결핵은 영양 있게 잘 먹어야 하는데 아주 작은 위를 가진 엄마에겐 잘 드시는 거 또한 힘든 일이었지. 어깨 수술 후 재활만 좀 도와드리고 복귀하려고 했던 나의 계획이 무너지고 그로부터 결핵 약을 끝낼 때까지 나의 삶은 그저 엄마에게 맞춰져 있었지. 6개월의 치료를 끝내던 날 엄마가 좋아하시던 믹스커피로 잔을 부딪치며 애썼다며 엄마와 나 기뻤었지. 근데 엄마 그거 아셔요? 내가 엄마 간호하느라 일도 제대로 못하고 했는데 내 살림은 줄어들지 않았다는 거예요. 오빠는 혼자 간병하는 내가 고맙고 미안하다며 병원비를 보내 주고 내 용돈도 주고, 주위의 친구들과 친지들의 마음이 가득가득 들어와서 내가 걱정했던 것과 다른 결과에 내가 많이 놀랐었어. 그리고 나는 깨달았어. 옛말에도, 성경에도 부모에게 잘하면 복 받는다고 하잖아. 그래서 이번에 엄마가 다시 아프실 때도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엄마와 함께 있겠다 한 거야.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엄마, 이렇게 엄마에게 편지 쓰니까 엄마가 너무 보고 싶고 그립다. 나는 엄마와 함께 보낸 몇 개월이 너무 좋았어요. 남들은 힘들어서 어떡하냐고 했는데 나는 정말 힘든 것보다 엄마와 함께 있어서 좋았고, 엄마와 평생 하고 싶었던 말을 밤낮으로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엄마 정말 고마워요. 평생 하나님을 믿던 나와 싸워 왔던 엄마가 미신들을 버리고 침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셔서요. 사실 엄마 2년 7개월 전에 의사 선생님이 엄마 2년 정도밖에 못 사실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난 엄마에게 최선을 다하고 돌아가셔도 절대 후회하지도 울지도 않을 거라고 다짐했었어요. 점점 쇠약해져 가는 엄마를 바라보면서 엄마에게 하나님을 알려야 되겠다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 기회가 잘 오지 않았었는데 엄마가 아주 많이 아프시던 다음 날,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시던 날 엄마에게 “엄마 이렇게 돌아가시면 나 다시 못 만난다. 그런데 다시 만날 방법이 딱 하나 있는데 말이야. 그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돼. 엄마 교회 가서 우리 침례 받자. 그럼 엄마 나중에 예수님 오시는 날 엄마랑 나 만날 수 있어. 어때 좋지 않아?” “정말? 그럼 받아야지. 받자.” 할렐루야! 엄마 아셔요? 엄마는 가장 88한 나이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셨어요. ^_^
아주 88한 나이 88세에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 엄마. 영원히 살 수 있는 용기를 내 주신 우리 엄마. 대단하고 위대했어요. 안식일 당일 마귀가 질투라도 하는지 컨디션이 나빠지셔서 침례를 미루려고도 했지만 엄마가 힘을 내 주셔서 침례를 받을 수 있었지. 비록 걸을 수 없으셔서 약식 침례로 이루어졌지만 우리 엄마 아픈 거 참 잘 참으시고 무사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셨지.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자녀 삼아 주신 우리 엄마. 생각지도 못한 날에 당신의 소망처럼 주무시듯 가신 엄마. 가슴이 저리도록 아프고 슬프지만 재림의 날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하나님 잘 믿으며 이 막내딸 잘 살아 볼게요. 엄마가 내 엄마여서 너무 행복하고 좋았어요. 평생 사랑으로 키워 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엄마가 가르쳐 주신 사랑 잘 기억하고 저도 엄마처럼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며 살다 갈게요. 이번 추석에는 엄마가 마지막으로 농사지으셨던 강낭콩으로 송편을 만들어 고마웠던 분들께 선물하려고 해요. 엄마, 잘 주무시고 계시다 우리 다시 꼭 만나요. 정말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우리 엄마!
- 김기섭 사회복지학, 한방미용 전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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